신용이라는 말은 더이상 느낌으로 오는 용어가 아니다. 감상적이지도 않다. 경제용어이고 빚, 대출, 채무 등과 동일어이다. 신용에 따라 빚을 지거나 빚을 갚거나, 아니면 파산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이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본다.
신용이라는 검색어
“신용”, 참 듣기 좋으면서도 부담스럽다. “믿음”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왜 그럴까. 그냥 “믿음”으로 생각할수 없는 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래서 “신용” 이라는 뜻을 찾아보았다.
네이버에 “신용”이라는 단어를 치자마자 연관검색어에 뜨는 단어는 매우 현실적이다. ‘신용회복위원회, 신용등급 점수표, 신용카드, 신용점수, 신용대출, 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기금, 신용카드 추천, 신용등급’ 등이다. 도대체 예상했던 “믿음”이라는 느낌의 검색어 키워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모두 “돈”과 관계가 깊다. 좀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빌린다는 것’ 즉 ‘빚’과 관계가 깊다. 그것도 개인의 빚과 관계가 있다. 어쩌면 다음과 같은 5단계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1. 돈이 꼭 필요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
2. 어딘가 또는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린다는 것
3. 빌린 돈을 갚거나 갚지 못한다는 것
4. 신용을 유지하거나 신용을 잃는다는 것
5. 신용 회복마저 실패한다는 것
이렇게 나열해 보니 ‘신용’ 이라는 용어가 조금 명확해진다. 도대체 ‘믿음’이라는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고 보니 더욱 정확한 용어가 있다. 바로 “대출”. 빌린다는 말은 조금 개인적이다.
‘은행에서 빌린다’고 하지는 않는다. ‘대출 받는다’라고 한다. 그저 한글과 한문의 차이가 아니듯 하다. 그만큼 대출이라는 용어는 무서운 “이자”와 “상환”이라는 책임과 함께 “파산”이라는 결과도 함께한다. 이건 사실이다. 그리고 현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신용[信用]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았다. 한문의 뜻은 순진해 보인다. ‘믿음을 사용한다’라는 뜻으로 보이지 말이다.
[신용의 정의]
채권·채무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인간관계를 가르키는 경제용어.
[신용의 개념]
신용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 또는 신임한다는 뜻으로 사회생활에 있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어주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경제용어로서의 신용은 이와같이 주관적·심리적 의미보다는 객관적인 인간관계와 사회관계를 가리키며, 이때 주관적·심리적 요소는 부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경제용어로서의 신용은 단적으로 말하면 채권·채무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인간관계를 말한다.
상품이나 물품을 매매, 거래함에 있어서 그 대가를 뒷날 지급한다거나 또는 금전을 대차하는 따위의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신용은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이 발생하고 발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급속히 확대되어 자본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이루게 된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네이버백과사전은 그외 신용의 종류와 기능 그리고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자세히 읽어봐도 거의 똑 같은 관점이다. 특히 채권, 채무관계라는 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즉, 모두 하나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채권, 채무”, 다른 말로 “빚”이다. 1) 빚을 지고 2) 빚을 갚고 또는 3) 빚을 못갚고. 이 세가지가 신용의 특징이다.
일상에서는 신용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저 사람은 신용이 있어!’ 라는 말을 들으면 참 기분좋다. 믿음이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개인 사이에 ‘‘신용’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용할까. ‘저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야!’ 하고 말지 ‘신용이 있어’라고 조금 공식적인 느낌의 표현을 쓰지는 않을것이다. ‘믿음’ ‘신뢰’ 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내가 신용을 버린게 아니다.
아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경우는 피치못할 경우에 찾아온다. 쉽게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밤새 고민끝에 한 부탁이 거절당한다면 무척 마음이 상한다.
꼭 필요한 돈을 빌리지 못해 좌절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상처도 무시 못한다. “내가 이렇게 신용이 없는 사람일까.” 이제서야 한없이 생각이 맴돈다.
그저 돈이라는 목적의 매개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마음 상하는 순간만 지나가면 그만일수 있다. 나는 신용없는 사람이니 더욱 노력해야지. 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지만 돈이 매개될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심지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신용을 버리지 않았다. 돈이 나의 신용을 저버린다. 살아가는 일에서 돈을 잃으면 신용은 사라진다.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돈이 사라지면 신용이 사라진다. 내가 신용을 버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신용은 믿음이 아니다.
신용이 믿음이라면 이 사회는 참 살기좋은 곳이 될 것이다. 신용을 평가하는 일이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사회가 법이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미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TV를 켜자마자 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는 우리를 숨막히게 만들기 충분하다. 폭행, 살인, 사기, 교통사고, 심지어 보이스피싱까지.
법이 없다면 무법천지가 된다. 무법천지는 좋은 말 아닌가.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말은 아수라를 의미한다. 법이 없으면 난장판이 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법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될까. 그러면 인간의 본성을 다시 살펴봐야 할까.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번 빌려준 돈을 못받는 일은 허다하다. 당하는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경제적 타격도 크다. 여유있어 빌려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물며 큰돈이 오가는 은행거래에서 ‘신용’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빌려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현금이 오고 간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도대체 사람의 본성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신용을 평가하는 일
누군가에게 무엇은 ‘평가받는다’는 것은 요즘에 흔한 일이다. 결과가 좋다면 기분 좋겠지만 과정 자체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특히 신용을 평가받는 일은 주로 ‘채무’와 관련되기 때문에 항상 부담스러운 일이다.
반면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 간단한 일일까. 그럴것 같다. 요즘처럼 모든 경제 활동이 낱낱이 디지털 기록되는 세상에서 정말 쉬운 작업일 수 있다. 인격을 조사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그래서 사람의 신용을 등급으로 나눈다.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왠지 등급이라고 하니 썩 기분 좋지는 않다. 소고기, 돼지고기도 등급으로 나누지 않던가.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점수제다. 만약 수치상 1점차 때문에 누구는 대출을 받고 누구는 대출을 못받는다면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수제는 1점부터 1,000점까지 구간을 나눈다. 등급제에서는 10개 구간이지만, 점수제에서는 1,000개의 구간이 되는 셈이다.
나의 신용 등급과 점수는 어디 구간에 속할까. 열심히 돈만 벌고 연체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고 있으면 신용등급과 점수는 별 의미가 없는 걸까.
또 한가지, 무척 궁금한 것이 있다. 부자들은 대출도, 연체도 없다면 그리고 돈을 빌릴 이유도 없다면 그들에게 신용등급 점수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용등급 점수표는 오로지 대출을 하지 않고서는 주거나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서민들 용도일까?
이제 신용을 평가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신용이 우량인 개인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신용이 불량한 개인은 신용 점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할 것이다. 개인의 모든 경제 활동은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과 매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는 왜 필요할까.
현재 한국에는 두개의 신용평가사가 있다. KCB 올크레딧과 NICE 마이크레딧이다. 정부 기관은 아닐터, 차츰 두 회사의 평가 요소에 대해 파헤쳐 보기로 한다.
자본주의 경제 활동에는 공급자가 있으면 반드시 수요자가 있게 마련, 두 평가사의 고객은 주로 금융권 즉, 은행, 카드사, 보험사이다. 물론 다른 경우에도 사용되겠지만, 주로 채무, 즉 빚에 주로 사용된다.
내가 은행에서 5억의 대출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은행에서는 우선 담보를 최우선으로 잡을 것이다. 이 경우에 신용점수 하락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담보의 가치 때문에 나의 채무위험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신용 점수가 최하 등급이라해도 확실한 담보라면 대출은 가능할 것이다. 그게 담보의 위력이다. 하지만 담보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5억이라는 대출은 없던일로 되기 쉽다. 신용 대출로 10억을 쉽게 빌려 줄 은행은 많지 않을테니까. 오랜기간 특별한 거래실적이 있거나 보장할 수 있는 신분이나 전문직이라면 또 모를까.
결국 신용대출은 신용평가가 필요하다. 거래 내역이 있으니 금융권 자체 신용평가는 우선시 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평가 요소가 더 필요할 것이고 은행권 자체 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신용평가사의 등급과 점수표가 필요한 것이다.
신용을 관리하는 사회
백만장자 부자들은 신용등급 점수표가 1등급에 1,000점일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억만장자라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대출도 없고, 부채도 없고, 연체도 없다. 현금을 집에 쌓아둘수 없으니 은행 거래는 활발하다. 신용카드 한도액은 충분하고 사용액도 50%이내에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카드 연체도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신용점수는 높을 거이다.
반면 은행거래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 억만장자라 해도 당연히 신용등급과 점수는 높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신용등급과 점수 평가제도는 현재 돈이 많은 억만장자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회는 대출이다. 빚의 개념이 아니다. 순기능이다.
“신용을 평가한다” 는 것보다 “신용을 관리한다” 는 표현이 조금 더 바람직하다. 기회는 붙잡는 것이지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